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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스트레스의 이해와 관리-1

by 달빛러블리 2024. 3. 25.

1. 정보처리 관점
정보처리 관점은 심리학, 특히 심리학의 순수 분야인 인지심리학에서 인간의 인지적인 수행(예 : 학습, 기억, 이해, 문제해결 등)을 연구하는 데 주로 채택하는 접근법이다. 정보처리 관점은 195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하여 그 당시까지 심리학에서 풍미하던 행동주의 심리학의 관점을 대체하게 되었다. 행동주의, 특히 급진적 행동주의는 인간의 행동이 외부 자극의 특성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결정되며, 이러한 외부 자극의 특성만 알면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보았었다. 그러나 정보처리 관점에서는 우리가 외부 세계를 표상(representation) 혹은 구성(construction)한다는 표현을 통해 세계가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경험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여기서 표상 혹은 구성되는 것을 정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외부 세계는 인간(혹은 정보처리자)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표상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보처리 관점에서는 인간의 행동이나 반응은 단순히 환경의 자극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고 인간이 그 자극을 처리하는 방식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본다. 즉, 정보처리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은 환경의 자극에 의해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자극을 처리하여 정보를 만들며 그 정보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보처리 관점은 최근에는 심리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즉, 인간의 삶이 외부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정보를 구성해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정보처리 관점은 인간의 삶 전반을 설명하는 판점이 되고 있다. 정보처리 관점은 또한 심리학 밖에서도 수용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요즘은 컴퓨터와 같은 기계도 주어진 자극을 가지고 정보를 처리한다. 따라서 살아 있는 유기체든 기계든 일반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정보처리자의 정보처리를 설명하는 데 정보처리 관점이 수용되고 있다. 관련된 학문 분야로는 정보처리 일반을 다루기 위해 철학, 언어학, 심리학, 전산과학, 신경과학, 인류학 등의 여러 학문이 공동으로 관여하는 학제적 학문 분야인 인지과학을 들 수 있다. 정보처리 관점에서 정보를 구성한다는 측면을 구성주의(constructivism)의 이름으로 좀 더 철저하게 다루고자 한다. 이것은 다루고자 하는 스트레스의 이해와 관리를 위해서 기초가 된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즉, 스트레스는 외부 자극에 의해 일방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관여해서 만드는 것이라는 관점을 갖는다. 또한 정보의 구성이라는 측면이 일반적으로 정보처리 관점을 따르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충분하게 수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보처리 관점은 외부 자극 못지않게 내부적 특성을 강조하므로 정보처리자의 내적 특성을 규명하는 데 노력을 많이 경주한다. 이 장에서는 정보처리자의 내적 특성을 정보처리체계라고 부르고 정보처리에 있어서 중요한 정보처리체계를 소개하고자 한다. 아울러 정보처리체계에서 구성하는 정보의 유형에 대하여도 다루고자 한다. 정보처리체계와 정보의 유형에 대한 이해는 스트레스를 정보처리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끝으로 인간이 환경 자극을 처리하는 정보처리과정, 즉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정보를 구성함에 있어서 내재하는 기제를 설명하기 위해 안-밖 합치도 모형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스트레스 역시 인간이 환경과의 상호작용, 즉 정보처리를 통해 구성하는 것이라고 볼 때, 이러한 구성에 내재하는 기본 기제를 이해하는 것은 스트레스의 이해와 관리에 도움이 될 것이다.


2. 구성주의
구성주의(constructivism)는 한마디로 일체유심조, 즉 모든 것이 마음이 구성한(혹은 만든) 것이라는 입장과 통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 전제로 하는 구성주의는 외부 세계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모든 것이 자의적이고 꿈과 같다는 식의 극단적 입장은 아니다. 구성주의에서는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가 우리 스스로가 구성한 구성물(constructs)이라고 본다. 우리의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대상(세계와 자기)이 있다고 가정하지만, 그 대상은 결코 우리의 경험을 넘어서 헤아릴 수가 없다. 이 점은 Kant가 물자체(Ding-Ansich, Things-Themselves)는 알 수 없다고 한 입장과 통한다.


(1) 세계는 내가 만든 것이다
집을 짓고, 그림을 그리고, 작곡을 하고, 영화를 만들고, 다리를 놓고...우리의 활동을 통해 우리 주변의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세계를 우리가 만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성주의에서 세계를 우리 자신이 만들고 있다고 하는 것은 이런 의미보다도 우리가 세계에 대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앉아서도 세계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세계를 마치 거울처럼 있는 그대로 경험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하늘이 푸르기 때문에 푸르게 보고, 새소리가 아름답기 때문에 아름답게 듣고, 국이 짜기 때문에 짠맛을 느끼고, 장미가 향기롭기 때문에 그 향기를 맡으며, 나무의 표면이 거칠기 때문에 거칠게 느낀다고 믿는다. 구성주의 관점에서 볼 때, 세계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자극을 제공할 뿐이며, 그 자극을 통해 무엇을 경험하는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즉 방금 예를 든 감각경험은 우리의 시각, 청각, 미각, 후각 및 체감각 기관이 각 기관에 제공되는 빛, 소리, 맛, 냄새, 접촉의 자극을 처리하여 구성한 구성물이다. Whitehead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자연은 실제로는 우리 자신에게 부여되어야 할 영예를 얻고 있다. 장미는 그 향기로, 나이팅게일은 그 노래로, 태양은 그 빛으로 영예가 부여된다. 시인들은 전적으로 실수를 하고 있다. 시인들은 그들의 시를 자신에게 돌려야 하며, 인간 마음의 우월성에 대한 자축의 송시가 되도록 해야 한다. 자연은 소리도 없고, 향기도 없으며, 색깔도 없는 단조로운 사건으로, 단지 물질들이 끊임없이 의미 없게 돌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