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몇 가지 그림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구성적으로 세계를 해석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우리의 경험이 세계의 구성에 미치는 효과를 다루고자 한다. <그림1>은 2차원적으로 그려져 있다. 여러 선들이 모여있는데 2차원적으로 본다면 이 선들은 몇 개의 도형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2차원적인 선들의 집합 혹은 그 선들로 만들어지는 도형으로 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우리는 이 그림에서 3차원의 입방체를 본다. 이것은 우리가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음으로써 주어진 시각자극을 3차원으로 해석 혹은 구성하려는 강한 경향성을 지니게 되었음을 보여 주는 예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 그림을 한참 동안 계속해서 바라보면 그림이 처음과는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즉, 3차원 입방체의 모양이 달라 보인다. 그리고 계속해서 보고 있으면 이 과정이 지속적으로 반복됨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주어진 자극에서 의미 있는 도형을 구성하려고 적극적으로 작업하고 있음을 말한다. 한번 여러분 스스로 시도해서 경험하기 바란다. 시각적 변화가 금방 나타나지 않는다고 쉽게 포기하지 말고, 진득하게 그림을 바라보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
<그림 2>에서는 가운데 있는 13이 맥락에 따라 다르게 경험됨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보면 알파벳 B로 보인다. 그러나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보면 영어 알파벳 B로 보인다. 만약에 아라비아 숫자나 알파벳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일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주변 맥락의 차이가 우리 내부에서 동원되는 사전지식의 차이를 초래하여 동일한 자극에 대해 서로 다른 구성을 유발하였음을 보여 준다.
<그림3>는 동일한 그림이 매우 상이하게 인지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 그림은 오리로 볼 수도 있고 토끼로 볼 수도 있다. 이것은 보는 사람의 경험을 반영한다. 만약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오리나 토끼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그림에서 오리나 토끼를 볼 수 없다. 그저 흑과 백의 명암 차이와 선들에 대한 시각적 감각만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태어나서 지금까지 오리나 토끼 어느 한쪽만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오리나 토끼의 어느 한 동물만으로 보지, 다른 동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토끼든 오리든 우리가 구성하는 것이다. <그림4>도 동일한 그림이 보는 사람에 따라, 보는 방식에 따라 매우 상이하게 인지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여러분에게 이 그림은 무엇으로 보이는가? 젊은 여인으로? 아니면 늙은 여인으로? 어느 한쪽으로만 보였다면 다시 한번 그림을 잘 보기 바란다. 이 그림은 젊은 여인으로도, 늙은 여인으로도 볼 수 있다. 만약에 젊은 여인으로만 보이고 좀처럼 다른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이렇게 해 보라. 젊은 여인의 귀를 눈으로, 턱을 코로, 또 목걸이를 입으로 보라. 반대로 늙은 여인으로만 보이고 좀처럼 다른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이렇게 해 보라. 늙은 여인의 눈을 귀로, 코를 턱으로, 입을 목걸이로 보라. 앞에서는 주로 시각적 측면에서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구성하여 인지하는가에 초점을 두어 예를 들었다. 이러한 구성적 인지는 특히 일상생활에서 더 풍부하게 그 예를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죽고 못 사는 야구 경기가 다른 사람에게는 한없이 따분할 수 있다. TV에서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명강사가 갑에게는 재미있는 사람일 수 있지만, 을에게는 매우 경박한 사람일 수 있다. 특정 이데올로기는 어떤 집단에 있어서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할 무엇이지만, 다른 집단에게는 어떻게 해서라도 막아야 할 무엇일 수 있다. 또한 똑같은 영화를 보고 나서도 느낀 소감은 사람마다 많이 혹은 조금씩 다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세계를 만들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스트레스를 만들고 있다는 이 책의 관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어서는 스트레스를 만드는 데 관여하는 우리의 내면적인 특성에 대하여 다룰 것이다.
(2) 나는 내가 만든 것이다
좋은 책을 읽고, 자기 수양을 하고, 스스로 목표를 세워서 자신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측면에서 우리 자신을 우리가 만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성주의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만들고 있다는 것은 이런 의미보다도 평소에 스스로 알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바로 우리 스스로의 구성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가 우리의 구성물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앞에서 세계(혹은 우리가 아는 세계)가 우리의 구성물임을 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구성을 하는 나 자신도 나의 구성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대상으로 삼고 그 특성을 구성하는 것이다. 나의 몸, 나의 마음도 세계처럼 나의 인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세계의 구성에서처럼 구성의 원재료로서의 나의 존재는 가정된다. 그러나 그 나는 세계와 마찬가지로 나의 인식을 떠나서는 언급될 수 없다. 세계를 구성적으로 인식하는 나 자신도 스스로의 구성적 인식으로밖에는 알 수 없다. 나와 세계에 대한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나라고 불리는 그놈이 있으나 그놈 자체는 알 수 없다. 이상과 같은 주장과 유사한 심리학 이론 중에 Darly Bem이 제안한 자기지각 이론(self-perception theory)이 있다. 이 이론은 우리가 자신에 대하여 판단할 때,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관찰할 수 있는 단서들을 가지고 추론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정서나 태도 등 내적 상태는 부분적으로 자신의 행동에 대한 관찰과 행동이 나타나는 상황을 추론함으로써 알게 된다고 본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어디 자신의 정서나 태도뿐이겠는가. 자신의 모든 면이 자신의 인식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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